물향기 편지) 문정왕후 어보 환수… 숨막히던 ‘그날’의 기록; 묵지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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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향기 편지) 문정왕후 어보 환수… 숨막히던 ‘그날’의 기록; 묵지의 비밀

2013년 9월 19일. 미국 LA 현지 시간으로 추석날 오후 4시. 나는 문정왕후 어보 환수 2차 협상을 마친 후 혜문, 한신대 김준혁 교수와 함께 다음과 같은 역사적인 발표를 하였다.
“조국에 계신 국민 여러분, 이곳 LA에서 기쁜 추석 선물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LA 라크마 박물관은 문정왕후 어보가 한국전쟁 기간 중 도난품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였으므로, 한미 우호 증진을 위해 조건 없이 어보를 반환키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러나 라크마 박물관과 어보 반환 합의 이후 어보의 소유자였던 미국인이 반환불복 소송을 제기했고, 3년 넘게 진행된 재판은 올해 5월 31일 반환판결로 소송이 끝났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 방미 기간에 반환받아 귀국비행기에 대통령과 함께 조국의 품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그동안 성원과 후원해주신 분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리며, 문화재청과 LA총영사관, 워싱턴 주미대사관 관계자들께도 정식으로 감사드린다.  특히 문화재제자리찾기 회원들과 어보 되찾기 독수리 오형제중의 한분인 임병목 치과원장님과 독수리 오형제를 후원해주신 재미동포 김인곤 회장님께 감사드린다.

수사와 압수보다 협상을 통한 반환 요청
LA 현지시간으로 2013년 9월 19일 오전 10시 30분. 오후에 예정된 라크마박물관 측과 정식 협상에 앞서 제프야로슬라프스키(Zev Yaroslavsky) LA 카운티 슈퍼바이저와의 면담이 성사된 것은 다행이었다. 러시아계 정치인으로 65세인 그는 40여 년 동안 LA 한인타운을 기반으로 시의원을 거쳐 19년째 슈퍼바이저를 하고 있는 우리 표현으로 ‘소탈한’ 정치인이었다. 야로슬라프스키 슈퍼바이저는 면담 자리에 박물관 담당 변호사를 배석시켜 사전 이견 조율이 가능토록 하였으니 매우 감사할 따름이다. 아마 야로슬라프스키 슈퍼바이저와 면담이 없었더라면 환수 결정은 다음으로 연기되었을 것이다. 그날 나는 어보 반환에 대한 진정성을 그에게 이야기했고, 그가 어보 반환에 협조해주면 차기 슈퍼바이저 선거를 돕기 위해 LA에 와서 한인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겠다고 제안도 했다. 왜냐하면 그가 지역의 슈퍼바이저기기에 그가 라크마박물관의 결정에 매우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얼마나 반환에 도움을 주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나는 지대한 도움을 주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도난품 인정, 조건없는 반환 결정
박물관에서 협상을 시작하기 전 우리 일행을 격려하기 위해 총영사께서 오찬을 마련해주셨다. 총영사는 동북아역사재단 사무총장을 역임한 바 있는 외교관이어서 문화재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상당한 분인 듯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예상하는 협상 전망은 그리 밝아 보이지 않았다. 세계적으로 협상을 통한 반환은 전례가 거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이미 2013년 6월에 국회에서 문정왕후 어보 반환 결의안을 제출했었고, 그 결의안을 이미 라크마 박물관에 제출했었다. 아무리 문화재에 대한 식견이 있는 총영사의 예상이 맞을 수 있다 해도 난 절대로 협상에서 지지 않을 것이란 다짐을 했다.
오후 3시. 잃어버린 조선의 혼을 되찾겠다는 결연한 마음으로 2013년 7월에 이어 두 번째 협상을 위해 라크마 박물관에 도착했다. 박물관 측 협상 대표는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부관장과 변호사가 나왔고, 지난번 부관장이 테이블 중앙에 앉아 불쾌하던 자리 배치와는 달리 이번엔 부관장이 나와 마주 앉으니 좋은 징조가 느껴졌다. 한가위 명절을 핑계로 나와 김준혁 교수가 두루마기 한복을 입으면 박물관 측이 위축될 것이라는 얄팍한(?) 계산으로 난생 처음 입은 두루마기가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분명히 어보 반환을 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 이유는 지난 7월에 라크마 박물관과 문정왕후 어보 반환 협상 마지막에 있었던 너무도 신비로운 경험 때문이었다.
나는 처음 문정왕후 어보가 약탈된 문화재이고 이를 반드시 되찾아야 한다는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어보를 되찾는 일이 내 운명과도 같은 생각들이 들었다. 그래서 문화재 전문가인 김준혁 교수의 자문을 들으면서 문화재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혜문과 김준혁 교수와 함께 2013년 7월에 라크마 박물관을 찾아간 것이다.
당시 라크마 박물관 부관장과 고문변호사가 우리를 맞이했다. 친절하게 우리를 맞이했던 그들은 협상이 시작되자마자 매우 냉정하고 자신들의 소장 유물을 지키겠다는 모습이 역력했다. 당시 라크마 측은 우리가 제시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문정왕후 어보가 종묘에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라고 주장했다. 이는 말도 안 되는 억지였다. 종묘에 보관한 어보에 대하여 종묘에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라니 참으로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결국 도난품이라는 우리의 주장과 증거를 대라는 미국 측 주장은 한 치의 타협 여지가 없이 2차 현상 때 다시 보기로 하고 마무리 되었다. 그런데 마친 박물관 측이 한국관이 리모델링 중이라 어보를 꺼내왔다며 우리에게 감상하라고 배려해 주었다. 그리고는 장갑을 주면서 직접 만져보게 하기 까지 했다.

어보! 신물인지라 보는 이의 눈을 빼고 만진 자의 손목을 잘랐다는 어보를 눈앞에서 볼 수 있다니! 그러나 나는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천천히 어보를 들어 보았다. 이로서 어보를 만진 유일한 정치인으로 기록되는 순간이었다. 어보를 유심히 보다가 희미한 묵지(墨紙)가 붙어 있기에 유심히 보니 六室大王大妃란 한자가 적혀 있었다. 깜짝 놀라 김준혁 교수에게 이 한자의 의미가 무엇인지 물었더니 六室大王大妃란 종묘의 6번째 방인 중종과 문종왕후의 전각을 뜻한다는 것이었다. 숨이 멈출 듯한 순간이었다. 박물관 측에 한자의 의미를 설명하였고, 이야기를 들은 그들은 너무도 충격에 빠져 우리와의 면담을 빠르게 종료했다. 그들 역시 어보를 관리하면서 묵지를 처음 본 것이었다. 이것은 너무도 놀라운 일이었다.
7월 달에 내가 문정왕후 어보의 묵지를 발견한 것은 참으로 대단한 일이었다. 2010년과 2012년에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해외 문화재를 확인하기 위해 전문가들이 라크마 박물관을 찾아 모든 유물을 조사했는데 그들의 눈에는 묵지가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 묵지가 내게는 보인 것이다. 이는 문정왕후 어보를 되찾게 하기 위한 하늘의 뜻이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난 9월에 있는 2차 면담에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2차 면담을 시작하자마자 박물관 측은 “어보가 도난품인 것을 자체 조사로도 충분히 확인을 했으니 반환을 결정했습니다. 반환 절차를 협의할 파트너를 정해주면 즉시 반환작업에 착수 하겠습니다”라고 했다. 나는 귀를 의심하면서 흥분을 가라앉히고 옆자리의 혜문에게 “다 된 거죠?”라고 확인하자 혜문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김준혁 교수가 엄지손가락을 보이며 확인 표시를 해주었다.
이에 협상 대표 격인 내가 “지금까지 문정왕후 어보를 안전하게 잘 보관해준 라크마 박물관에게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을 대신해서 감사드립니다. 대한민국은 오늘 추석인데 국민들에게 최고의 추석 선물이 될 것입니다”라고 화답하였다. 62년 동안 미국을 떠돌던 문정왕후 어보 환수가 결정된 순간이었다. 18일 오후 3시 30분경이었다.

어보 환수, 약탈당한 문화재 환수 계기로 삼아야
어보 반환 결정 소식은 방송, 신문 등 모든 언론에서 2013년 추석 연휴 주요 기사로 다루어질 정도로 역사적 의미가 깊었다. 한국전쟁 당시 한 미군 병사가 종묘에서 미국으로 가져간 어보가 마침내 조국의 품으로 돌아오게 된 것은 혜문을 비롯한 각계 노력의 결과라고 치하 드리고 싶다.
‘문정왕후어보환수촉구대한민국국회결의안’을 발의한 인연으로, 박물관 측과 두 차례에 걸친 협상 대표로 나선 내가 알기엔, 민간의 노력에 의해 미국으로 약탈된 문화재 반환을 성사시킨 최초의 성과이다.
4년여 가까이 기다려온 어보 환수에 대해 정부도 하루속히 고국으로 돌아오는 문정왕후 어보를 위해 국민적 예를 갖추는 형식을 준비하고, 차제에 약탈당한 문화재를 환수하려는 실효성 있는 계획을 세우는 계기로 삼기를 바란다. 이왕이면 반환촉구 성명서를 발표한 북한 당국에도 감사의 뜻을 표하는 도량을 우리 정부가 보여주길 희망한다. 이번 어보 환수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이 미미했던 것도 개선되어야 할 점이다. 정부가 행정과 예산을 뒷받침해주고 민간이 앞장 서는 효율적인 거버넌스를 작동하면 세계 도처에 흩어져 있는 약탈된 국보급 문화재 환수는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확신이 들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돌아오는 문정왕후 어보가 문화주권의 상징을 넘어 국운융성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 이왕이면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문재인 대통령에게 어보를 반환한다면 이보다 의미 있고 감동적인 선물은 없을 것이다. 어보가 한미 정상 우호증진의 촉매가 되길 바란다.

더 큰 오산으로 보답하겠습니다 - 국회의원 당선자 안민석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