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향기편지] 국민의인 노승일을 지킵시다

대한민국 현대사의 물줄기를 바꾼 최순실 국정농단의 핵심 증인 중의 한 사람 노승일! 그는 청문회에 등장한 많은 증인들 중 가장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 거침없는 사이다 발언과 선을 넘는 최순실을 향한 공격성 답변 때문에 국민들은 그를 ‘국민의인’이라 불렀다. 그런데 노승일의 보금자리가 불탔다. 그의 보금자리뿐만 아니라 꿈과 희망도 한순간에 재로 변했다.

지난여름 처가가 있는 광주로 내려가 지인들의 도움으로 삼겹살 식당을 개업했고, 처가와 함께 살 집을 짓기 위해 광주 근교 시골 폐가를 3천만 원에 매입하고 은행 융자를 얻어 새로운 집을 짓고 있었다. 고단한 그의 삶에 새로운 에너지가 생겼고, 벚꽃 필 즈음 아픈 아내와 어린 아들과 함께 새집으로 이사할 계획이었다. 대구의 달구벌과 광주의 빛고을을 합쳐 달빛하우스로 집 이름을 미리 지었는데, 나는 일요일 오후 불타버린 달빛하우스를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국민의인 노승일은 그답지 않게 허망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 채 나를 맞았다. 앙상한 스틸 뼈대만 남은 화재 현장을 보면서 최순실의 표정이 자연히 떠올랐다. 최순실의 저주인가?

나는 노승일을 국정농단 청문회장에서 처음 만났다. 그가 박영선 의원에게 제공했던 최순실의 녹취록을 애초에 나에게 주려 했으나 당시 청문회 도중 정유라 은신처 제보를 받고 독일로 가 있었다. 아마도 내가 정유라가 은신하던 집 근처에서 뻗치기 하는 시간에 노승일은 나를 만나러 국회에 왔던 것 같다. 그와 나의 인연은 어긋나는 듯했으나 청문회를 마치고 주진우 기자를 통해 따로 만났고 결국 우리 셋은 최순실의 독일 은닉 재산 추적 원팀이 되어 함께 독일, 스위스, 리히텐슈타인 그리고 오스트리아, 헝가리를 헤매고 다녔다. 최순실의 네덜란드 페이퍼 컴퍼니를 찾기 위해 왕복 1,000km 가 훨씬 넘는 길을 하루 만에 차로 다녀오기도 했고, 스위스에서 헝가리 가는 기차가 연착되어 9시간을 기차 안에서 새우잠을 자기도 했다. 먹는 것은 주로 컵라면, 빵 그리고 햄버거였는데 누군가 해야 할 일을 하는 애국심으로 고생의 시간을 나누는 사이 그와 나는 형제 같은 사이가 되었다.

지난여름 처가가 있는 광주로 내려가겠다고 했을 때 그의 고단하고 특별한 삶을 마무리하고 평범한 가장으로 살아가기를 바랐다.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평범한 삶이 노승일에겐 이리도 어려운 일일까? 전소된 자기 집 보다 자기 때문에 불탄 옆집을 더 걱정하는 그를 보며 인간 노승일의 진면목을 다시 확인하였다. 이런 와중에서도 최순실의 돈줄이 어느 카지노 업체일 것이라며 수사를 요청하는 그에게서 ‘노승일은 어떤 대한민국을 꿈꾸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와 어린 아들과 아픈 아내의 앞날에 신의 은총이 함께 하길 간절히 기도한다. 국민들이 국민의인이라 칭한 노승일이 슬픔과 좌절을 딛고 재기하도록 국민들께서 아낌없는 의리를 보여주시길 바란다. 그리하여 내부고발자를 국민들이 지켜주는 아름다운 선례를 남기면 좋겠다.

힘내라 노승일!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더 큰 오산으로 보답하겠습니다 - 국회의원 당선자 안민석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