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일간의 예산심의를 마쳤습니다.
예산전쟁이라고 일컫을 만큼 여야의 밀고 당기는 기싸움과 때론 여야가 협력하여 정부를 압박하는 나날이었습니다. 국민세금을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공무원들도 있었고 터무니없는 예산을 달라는 후안무치한 장관의 면전에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힘없는 장애인단체가 1억 원만 지원해달라며 애원하는 모습과 쌈짓돈으로 쓰는 특수활동비를 한 푼도 깍지 못하겠다는 정부와 청와대를 보면서 서글픔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지난 150일을 회상하면 할 말이 참 많지만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도 많고 기억이 가물가물한 내용도 많아 기록에 남기고 싶은 일들만 정리하겠습니다. 훗날 저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마무리 글을 남겨야겠다는 소박한 생각입니다. 아직 전쟁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상태라 다소 감정이 섞여 있을 수도 있겠지만 양심에 비추어 부끄럽지 않은 글을 남기려합니다.

지난 6월 예결위 간사라는 중책을 맡게 되었을 때 두려움과 설렘이 교차했습니다. 예산전문가도 아닌 제가 400조에 이르는 국가예산을 심의하는 야당책임자로서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가 두려웠지만, 국회의원으로서 국가예산 전체를 다룰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점에서 설렘이 있었습니다. 예결위 간사로 선임된 후 제가 먼저 했던 일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예산전문가들을 스카우트하는 일이었습니다. 국회 보좌관 중 예산전문가로 알려진 김상일 보좌관을 박영선의원님께 간청하여 스카우트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김상일 보좌관은 제 고등학교 후배이며 제가 삼선되고 첫해에 오산환승터미널 국비 확보를 위해 1년간 보좌관으로 있으면서, 지금도 기재부 예산실 직원들 사이에서조차도 신화로 회자되는, 오산환승터미널 예산확보와 더불어 세교수영장 예산을 추가로 확보하는데 성공했던 여의도 정가에서 인정하는 예산전문 최고 보좌관입니다. 또한 최재천 정책위원장의 추천으로 외부 정창수, 이왕재 박사 등 전문가 4분을 모셨는데 정부예산 삭감작업을 꼼꼼히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김상일보좌관, 외부 예산전문가들과 함께 안양 출신으로 당 예산전문위원인 이한규 박사의 역할이 단연 돋보였습니다. 지난 150일 동안 예결위 간사 안민석은 이렇게 전문가들의 지도와 자문을 받으며 저도 어느새 예산에 대해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소경이 눈을 뜨듯이 말입니다.

예결위 간사를 맡으며 두 번째 한 일이 국회 근처에 거처를 마련하는 일이었습니다. 12년간 국회의원하면서 서울에 따로 거처를 두지 않고 오산과 여의도 출퇴근을 하였고, 예결위간사를 하는 동안에는 밤늦게 마치거나 이른 아침 조찬이 있는 날이면 시간적으로 체력적으로 좀 부담이므로 150일 동안 시간과 체력을 아끼기 위해 서울에 거처가 필요했습니다. 마침 미국 유학을 마치고 취직한 제 딸 이슬이가 아빠의 이런 고민을 알고 자기의 오피스텔에서 지내도 된다고 허락 아닌 허락을 해주어 거처를 쉽게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아빠의 팬으로서 또 비평자로서 역할을 충실히 해준 딸이 이번에도 아빠의 고충을 이해하고 불편함을 감수해주어 고마웠습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느라 바쁜 제 아내도 일주일에 몇 번씩 서울과 오산을 오가며 반찬과 빨래를 공수하는 번거로움을 마다않으며 박신원 전 오산시장님이 붙여주신 별명인 ‘내조의 여왕’답게 예쁜 마음을 보여주어 감사했습니다. 서울에 거처가 있으니 밤늦게 퇴근하거나 여의도 회식자리도 부담이 없었고, 특히 아침 6시에 국회 목욕탕 1등 입장객으로 등극될 만큼 이른 아침부터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예산전쟁의 1라운드는 추경심사, 2라운드는 결산심사, 그리고 최종 결정판인 3라운드는 내년 예산심사로 이어졌습니다. 8월과 9월에 진행된 추경과 결산심사는 3라운드를 위한 몸풀기 정도라고 보시면 됩니다. 여야간사와 예결위원들간에 잽이 오가며 서로의 내공을 확인함과 동시에 정부를 대표하는 기획재정부장·차관, 예산실장과 예산실국·과장들과의 접촉을 통해 겉으로는 협력을 말하면서도 물과 기름 같은 국회와 정부를 대표하는 악역을 상호간 인정하는 일들이 2라운드까지 펼쳐집니다. 저는 2라운드까지 강단 있는 원칙주의자이면서 유연한 야당 간사로 평가되도록 목표하였습니다. 국민의 눈높이에서 허용할 수 없는 예산은 결코 양보하지 않는 대신 잘못을 인정하고 재발방지 약속을 진정성 있게 하거나 열심히 하려다 발생한 과오로 인정되는 예산 오류는 관대하려 했습니다. 때론 원칙과 유연성 사이에 인간적 갈등도 있었지만 양쪽을 잘 병행하는 것이 능력이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2라운드를 마칠 때까지 최소한 3라운드 중반까지는 야당 간사로서 소임을 제대로 하며 그런대로 예결위 분위기를 주도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이었습니다.

그런데 국정교과서 사태는 예결위 운영의 파행을 초래했고, 이후 야당의 스텝이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국회 선진화법에 따라 12월 2일까지 내년 예산을 통과시켜야 하는데 이는 일정의 촉박함과 졸속심사의 우려를 동시에 안고 있습니다. 즉 1분 1초가 금쪽같은 시간인데 국정교과서 사태로 3일간 예결위가 열리지 못했고 따라서 계수조정위원회도 순연되다보니 시간은 정부편이 되어버렸습니다. 국회, 특히 야당은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협상하고, 여의치 않으면 시간을 끌며 정부로부터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것이 기본전략인데 시간이 촉박하게 되면서 기본전략 구사가 불가능하여 오히려 정부에게 끌려다니는 결과가 초래되었습니다. 특히 여당 측에서 예산과 무관한 법안을 예산과 연계하는 전략을 구사하며 더욱 야당의 입지는 좁아졌습니다. 원래 예산과 법안 연계는 힘없는 소수야당의 고유전략으로 막판 벼랑 끝에서 야당이 원하는 법안을 얻고 정부여당이 원하는 예산을 통과시켜 주는 것인데 이번에는 힘센 여당이 법안과 예산을 연계하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막판에 청와대 수석이 국회에 상주하며 협상을 배후지휘하는 있을 수 없는 상황이 연출되었습니다. 결국 국정교과서 사태가 예산심의 파행으로 이어졌고 국회가 12월 2일에 쫓기고 질질 끌려다니는 신세가 되어버렸습니다.

나라 빚을 줄이고 재정 건전성을 이루려면 재벌이나 부자들로부터 더 많은 세금을 걷어야 하고, 세출은 보편적 복지에 최대한 초점을 맞추어 편성되어야 한다는 것이 예산에 대한 저의 기본 철학입니다. 누리과정의 경우 저출산 시대에 국가가 아동보육을 책임지는 선진형 복지로서 박근혜 대통령께서도 공약했으므로 중앙정부가 떠맡아야 할 예산인데 끝내 한 푼도 편성하지 못했고 시․도교육청에게 넘긴 것은 매우 유감입니다. 물론 기재부 예산실의 주장처럼 교육감들의 의지에 따라 교육청 재정으로 얼마든지 누리예산 편성이 가능하고 보육대란은 결코 없기를 바라지만 두고 볼 일입니다.
한편으로 국회가 지난 봄 약속했던 특별활동비 8천 억의 투명화나 삭감에 대한 어떠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지 못한 것도 아쉬움이 남습니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정부여당이 완강하게 반대하는 한 저 혼자로서는 역부족 이었습니다. 야당의 지도부의 리더십 역시 허약한 상황에서 야당 간사 혼자 버티고 싸우기엔 외롭고 지친 투쟁이었음을 이제서야 고백합니다. 국정교과서 예산 역시 비슷한 이유로 징벌적 삭감에 실패하였습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성과는 보육예산을 증액하는데 성공했다는 것입니다. 어린이 집 운영에 보탬이 되도록 보육료를 6% 인상하였고, 교사 처우개선비도 아쉽지만 3만 원선에서 인상하였을 뿐만 아니라 중단하려던 가정어린이집 원장 수당도 지켜냈습니다. 또 보육예산도 정부 원안 1만 원을 2만 원으로 올렸습니다. 공격용 살수를 하지 않겠다는 경찰청장의 약속을 받고 살수차 3대 중 1대만 허용하는 것으로 정리하였습니다. 마지막 날에는 편중된 TK 지역 SOC 예산을 인정하는 대신 호남 충청 지역의 SOC 사업을 증액하는데 성공했는데 TK SOC 예산을 눈감아 주던 언론이 SOC 예산 증액을 비판하는 것은 유감이었습니다.
오산 예산은 가능한 적법한 절차에 따라 확보했고 UN 평화공원, 미니어처 테마마크 신규 예산은 국가적으로 명분 있는 사업이어서 별다른 무리가 없었고, 기흥저수지 준설을 위한 예산도 끝까지 지켰습니다. 문제는 오산 시민회관 재건축 예산이었는데 기재부가 전례가 없다고 하면서 끝까지 수용불가를 고수했지만 문화와 체육시설을 병행하는 새로운 복합문화체육센터를 건립 명분에 합의하면서 마지막 심의 단계에서 400억 규모의 시민회관 재건축 예산을 확보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앞으로 100년을 바라보는 오산의 랜드마크가 만들어지길 기원합니다.

예결위 간사 자리는 부러움의 대상이면서 마치고 나면 욕먹는 자리입니다. 어떤 의원님의 경우 면전에다 대고 서운함을 거칠게 표현하시기도 했고, 일부 의원님들은 카톡 문자로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하셨습니다. 물론 고맙다는 말씀을 주신 의원님들이 더 많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400조 예산 심의를 마치고 허기를 달래기 위해 평소 좋아하는 컵라면을 먹으며 지난 150일 동안 제 어깨 위에 놓여 졌던 무거운 책임감을 내려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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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조 예산 심의를 마치고 꿀맛 같은 컵라면>

여당 파트너로서 많은 가르침을 주신 김성태 간사님, 저희 당 예결위원님과 계수조정소위원님들, 그리고 632호 보좌진 여러분께 감사를 표합니다.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치인으로서 소중한 기회를 주신 이종걸 원내대표님께 감사드립니다.

더 큰 오산으로 보답하겠습니다 - 국회의원 당선자 안민석 드림